딱32년전...

2022. 7. 18. 10:32공사판일기

※32년전 그때 그마음...

금으로부터 정확하게  32년전 춥고 매서운 바람부는 그날

어린난 어머니와 함께  십여리가 좀 넘는 비포장길을 걸어 읍내농협에서 내 입학금(내기억으로 48만5천원)과 형등록금으로

사용할 100만원 빌리기위해 아침부터 서둘러 집을 나섰다.

우리가 살고있는 마을은 읍내로부터 4KM가 조금넘는 시골중에서도 읍내에서 가장 멀리있는 산골마을이다.

읍내까지 가려면 흙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길을 1시간 정도 걸어가야한다.

집을 나온지 30분정도 지나 중간마을 정자나무앞을지나고 있을때 읍내에 다녀오시던 중간마을 아주머니 한분이 어머니께 인사를 건내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신다.

"나회장님요~ 어디 농협가는교? 내도 농협갔는데 요즘 농협에 돈이 없는지 대출을 못받았심더~ 괜히 나회장님도 추운데 먼길 헛걸음하지말고 그냥 돌아가이소~"

어머니와 중간마을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들고 오늘 마지막인데 등록을 할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온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어머니 나직하게 어린박씨에게 말씀하셨다.

"빨리 가자~"

아무런 말없이 어머니와 난 약30분을 더 걸어 읍내 농협앞에 도착했다.

때마침 농협에서 나오시는 또다른동네의 아주머니 두분과 만났다.

"아이고 나회장님 대출받으러 오셨나보네요~~ 우리도 왔다가 못받고 그냥갑니다. 아마 안될겁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 그아주머니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에게 말했다.

"잠시 밖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는 말씀을 남기고 홀로 농협건물안으로 사라지셨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그10여분의 시간이 왜그리도 길게 느껴지는지...

차가운 바람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우리어머니는 하늘처럼 높기만한 그 농협에서 100만원이라는 거금을 대출받아

나올지가 의문이였고 또 받지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뿐이였다.

농협을 오기전 만났던 3분의 아주머니들이 모두 대출받는것을 실패하고 돌아가는것을 직접 내눈으로 보았으니 말이다.

 

잠시후 어머니가 나오신다.

먼저 표정을 살폈지만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 난 어머니의 무표정한 모습에 직감적으로 '안되었구나~' 라고 포기를 할무렵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인근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가면서 봉투하나를 건네주셨다.

"돈 조심하고 다른데 가지말고 바로 등록부터 하고~~"

 

난 기쁜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바로 학교로 가서 수납을 하고  남은돈(1만5천원)으로 승차권을 구입했다.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나 어머니에게 어떻게 대출을 쉽게 받을수 있었냐~는 나의 질문에 들려주신 그때 그 이야기는 그 이후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때당시 농협을 찾은 어머님이 농협에 높으신 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다고 하신다.

"00님 대출안됩니꺼~? 다른사람들 안된다~고 다 돌아가던데~~"

아닙니다~ 됩니더~~~ 나회장님처럼 신용좋은분에게 대출안해주면 되나요~ 얼마필요합니꺼~~"

이렇게 일사천리로 거금 1백만원을 대출받으셨다고 한다.

-중략-

 

정확히  10달뒤에 1개월에 5만원씩 저금해서 50만원을 만들어 시골에 계시는 아버님을 찾아가

"그때 빌린돈 갚는다~"고 하고 돈을 건냈다.

당연히 불같은 성질의 울아부지 돈봉투 패대기치면서 "부자지간에 왠 돈거래냐~"고 호통을 치셨다.

난 한마디도 지지않고 "그때 분명 50만원 빌려달라~ 내가 10달뒤 갚는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때 당시 우리집 진짜 돈없을 때였다.

형 (Y대법대)3학년1학기 등록금과 내 입학금이 함께 나왔으니 엄마 아버지 걱정이 좀 많았겠는가?

 

외출했다 약주한잔하시고 들어오신 아버지에게 눈치보며 합격통지서 보여드렸더니 거들떠보지도 않고 방바닥에 합격통지서 던지면서~

말씀하셨다.

"이것도 학교라고~~~ 그리고 돈이 어디있다고~~"

그때 분명히 말씀 드렸다.

"아부지 50만원 빌려주이소~

내 열달뒤 딱 갚을거고 그리고 앞으로 등록금은 내가 벌어서 다닐테니 신경쓰지 마이소~~"

그리고 며칠뒤부터 어린박씨 설계사무소에 월급으로 5만원을 받기로 하고 취직을했다.

그리고 특별히 3층과2층가정집(소장놈집과 전셋집1곳)   쓰레기통을 비우는 조건으로8천원을 월급에 보태어 한달에 5만8천원을 급여로

받았다.

2층에는 다른 세입자가 살고 있었고 3층은 내가 다니는 설계사무소 소장이자 집주인인 이00 소장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2개월뒤 어느날 바로옆사무실에 근무하던 친구가 내가 매일아침 쓰래기비우는것을 힘겨워 하는것을 알고 자기 사무실에서는 청소아저씨에게 매월 1만원씩 주면 알아서 비워가니 나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조언해주었다.

듣고보니 참 좋은방법이고 '청소차 시간을 맞춘다~고 아침밥을 굶으면서 까지 새벽에 출근했던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에 고참에게 건의를 드렸다.

하지만 잠시후 설계사무소의 실질적인 우두머리겪인 황실장이  나를 부른다고 바로위 고참이 알려왔다.

'드뎌 내 건의사항이 통과된 모양이다~'

너무나 기뻐 한달음에 달려가 실장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실장님 의자를 돌리면서 휙~돌리면서 오른쪽 다리로 나의 복부를 걷어챴다.

너무 갑작스런 공격이라 '억~' 하며 몸이 앞으로 수구러졌다.

그때 저팔계처럼 피둥피둥 살이쪄 배가 남산만한 황실장놈  그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의 양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한마디...

"대가리피도 안마른새끼가 돈알기를 우습게 안다~땅파봐라~개새끼야 돈 십원 나오나~꼴보기 싫으니 꺼져 이쌔끼야~"

순간 너무 당황하고 황당해서 "제가 어려서 뭘 잘몰라서 그랬습니다.잘못했습니다~" 라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바로 뒤돌아나와 뒷쪽 화장실옆에 있는 수돗가로 뛰어나갔다.

차가운 수돗물을 틀어 정신없이 세수를했다.양볼이 화끈거린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복받쳐오르는 설음과 눈물을 참을수가 없었다.

그때내 나이 딱 스무살...

스무살 어린 박씨에게는 세상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다.

그리고 며칠뒤 고참들에게 말씀드리고 나는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그 첫직장을 그만두었다.

중략~

그런데 약 열흘정도 지나고난후 세상이 바뀌어버렸다.

새로운 직장에 면접을 보고 다른사람들을 제치고 합격해 그당시 파격적으로 10만원 의 월급을 받고

아침 여유로운 출근시간과 오후5시면 무조건 칼퇴근...(야간대학을 다니는 나에게 회사는 참으로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고마움을 모르면 인간이 아니다.

일이 바쁠때면 학교수업을 하다 밤에 출근을해서 밤샘을 해서라도 도면을 그려 일정을 맞추었다.

또 회사에서는 그런나에게 특별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개월뒤 5만원 월급파격인상...

대학 졸업하기도전에 월급이 30만원이 넘었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아버지에게 빌린 50만원을 갚을날도 더빨리 다가오고~~

등록금 걱정없이 학교를 다닐수 있었다.

 

 

「고향가는길...」


저 길모퉁이를 돌아서 올라가면 아버지 살아생전 부르릉  오토바이를 타고 읍내로 내려오시다가 나와 아들을 발견하고는 오토바이를 갓길에 세우고 반겨주셨던 기억이 이길을 지날때마다 떠오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만4년이 다 되어간다.구정지나고 며칠후면 4번째 기일이다.

딱 이맘때 32년전 난  울아버지에게 그렇게 서러웠고 화도 나고 미웠었다.

그런데 우연하게 큰아들녀석과 통화하다보니 등록금고지서가 메세지로 날라왔다고 한다.

잠시후 아들녀석 카톡으로 등록금영수증을 보내왔다. 4백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금요일 까지 납입해야 한단다...

갑자기 32년전 그날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 그렇게 미웠던 아버지가 많이 보고싶어진다.

물론 그 이후에 부자지간에 엄마가 차려준 술상앞에서 그때 그날의 이야기를 하면서 부자지간에 쌓였던 앙금을 다 풀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어느듯 4년이 흘렀다.

오늘따라 유난히 아버지가 보고싶다.

대신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그날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고마움을 표시했다.

전화기 너머로 마지막 말끝을 흐리시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내가슴에 아려 말꼬리를 자르며 전화를 끊었다.

'아들아~

너도 딱 32년후 아빠마음 조금은 이해할수 있겠지...

그리고 이세상에는  절대 당연한것도 없으며 노력없이 이루어지는것이 없다는 사실 깨우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