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주인없는 무덤은 없을텐데~~~

2016. 9. 7. 09:59이판사판공사판

※ 방치되어있는 무덤을 볼때면~

설과 더불어 민족의 최대명절인 추석이 다가온다. 예년보다 한달정도가 빨라서 사실 감이 떨어지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닥쳐오는 추석을 앞두고 그냥 휴일을 즐길수가 없다.

일요일 해마다 해오는 행사인 문중산과  선산에 벌초를 하기로 약속이 잡혀있었다.

토요일 내려가면서  동생에게 전화를 해보니 선산에 벌초를 오후에 형님과 함께 벌초를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대구에 도착할즈음 아들녀석에게 의견을 물었지만 "비가 내린다~" 는 구실로 사실상 바람맞았다.

목적지를 집이 아닌 시골로 방향을 잡았다.

기계다루는 솜씨는 형님과 동생에게 따라가지 못하지만 다른 잔일들은 도울수가 있고 또 형제가 함께하는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동생은 벌초중...」

제법 세차게 내리는 비도 그쳤다.

비는 그쳤지만 전날에도 비가 내려서인지 산속7~6부 능선에 자리한 어른들의 묘소 주변은 온통 안개로 자욱하다.

차에서 내려 짐을 챙겨서 산소까지 올라오는 약 4~5백미터의 산길에 벌써 온몸은 땀투성이이다.

그리고 땀냄새때문에 달겨드는 산모기떼의 공격...(다행스럽게 올해는 말벌의 습격은 없었다.)

하지만 그 어떤 난관도 3형제의 오늘 벌초를 끝내야 한다는 굳센 의지는 꺽지 못했다.

「무덤인가?목장인가?」

그런데 막상 땀을 훔치면서 묘소에 도착해보니 묘소의 상태가 가히 장난이 아니다.

분명 한이번 학식날 동생과 가족들이 할아버지 무덤과 아버님 무덤을 손보면서 잡초도 제거하고 나름 손을 보았던 무덤의 상태라고 하기에는

풀들이 너무나 무성하다.


잠시 땀을 훔칠 시간도 없이  늘상 해오던 벌초전 조상님들에게 인사를 올리기로 했다.

먼저 낫으로 좌판 주변에만 풀을 제거하고 집에서 챙겨온 소주와 오징어와 젓가락등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좌판에 내리는 순간 술병이

넘어지면서 깨져버렸다.

올라오면서 가방에 들어있던 기름통이 터져 가방속에 기름범벅이 된것도 짜증이 나는데 또 소주병이 깨져 모두 쏱아버렸으니...

할수없이 가져간 음료수 한병 올려놓고 인사를 드리고 벌초를 시작했다.

「형님도 벌초중...」

아버님이 몇해전 급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이산의 명의가 형님이 아닌 나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그것도 짐이라면 짐이다.

하지만 그누군가는 해야한다면 내가 하는것에 불평불만을 가져서는 안된다. 어차피 해야할일이라면 해야한다.

이산에 있는 8기의 무덤주인중에서 가장 어르신인 상할아버지(증조부)의 무덤이다.

난 기억한다.

어릴적부터 쭈욱 보아왔던 가끔 집구조가 바뀔때마다 그위치만 달라졌을뿐 한번도 없어지지 않고 꼭 걸려있던 액자속에 흑백사진으로 기억한다.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과는 대조적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양복을 입으시고 근엄한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내려보는듯한

표정으로 찍은 흑백사진은 잊을수가 없다.

「파평윤씨 할머니묘소...」

수많은 명절과 제사때마다 들어왔던 파평윤씨 할매의 묘소다.

우리산에서 가장높은곳 7부능선 끄트머리 양지바른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마찬가지겠지만 우리산에도 묘소의 위치나 높이는 돌아가신분의  순서에 따라서 정해진다.

조금 아쉽다면 그당시에도 미리 할아버지의 가묘를 할머니 옆에 만들어 두었다면 좋았을텐데~

암튼 기억속에 아버지의 넋두리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이가 안좋았다나 어쨌다나~~~ 

그나마 다행스러운건 몇해전 아버님의 무덤을 만들때 미리 옆자리에 어머님의 가묘를 만들어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어와 할아버지 무덤...」

파평윤씨 할머니에게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시절에는 상상이 되지않는 슬하에 아들둘만 두셨다.

그런데 우리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는 아들둘뿐인 파평윤씨 할머니에게 보란듯이 많은 자식들을 낳으셨다.

우리할아버지는 장손인 우리아버지 밑으로도 아들셋을 더두고 마지막에 귀엽고 이쁜 딸하나를 두셨다.

그리고 작은할아버지도 이에 질세라 딸다섯을 낳고 마지막에 아들둘을 낳아 칠남매를 길러내셨다.

( 혹시 신빙성이 떨어질까 어머님에게 여쭈어보니 딸이 일곱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는데 난 모른다. 암튼 내가 아는 고모만 5분이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보란듯이 큰아들을 필두로 아들넷과 딸하나를 낳았다.

사실 난 돌어릴적 그렇게 총명했다던 형님의 존재를 모른다.

하지만 가끔 아버님이 살아생전 가끔 약주를 드셨을때 아버님 품에서 돌아가신 큰아들 이야기는 지금도 그 느낌이 생생하다.

아버님은 말씀하셨다.

"갸를 내품에 안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검은 눈동자가 팽그르~ 돌면서 감기더라~~~ 아직 그것을 잊을수가 없다."


아버님 밑으로 남자형제만 셋이다.

우리집 삼형제를 제외하고 삼촌들에게 아들이 3명이 있다.

그리고 작은할아버지 두아들에게 아들이 1명있다. 그아들도 몇해전 결혼을 해 또 아들이 있다.

형님은 딸만둘...

난 아들만 둘...

아버님의 이름으로 되어있던 이 산이 내 명의로 넘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중략~



일요일 아침

다행스럽게 비가 내리지 않는다. 아침 8시까지 수변공원위 공터에서 삼촌들을 비롯 벌초할 가족들이 모이기로 했다.

가족이 많다는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선산 벌초중...」

아침 7시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는 작은녀석을 깨웠다.

전날밤 통닭을 먹으면서 '뿌리'에 대한 이야기가 통했는지 군말없이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간단하게 챙겨먹고 따라나섰다.

조금 일찍 출발이라 차가 막히지는 않아 약속시간에 맞추어 도착할수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선산에 올라가보니 이른 새벽부터 벌초를 시작한 다른 일행들(종손집안형제들)이 먼저 벌초를 마치고 다른곳으로 이동하려는 참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다리쉼' 을 했다.


「누구의 무덤일까!」

인근에 있는 또 다른 산의 묘소벌초를 위해 이동하는 중에 만난 주인없는 무덤이다.

분명 내가 어릴적 기억에는 누군가 벌초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런데 몇해전부터는 무슨일인지 돌보는이가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잡풀들은 무성하지 않은데 봉분에는 어디서 굴러떨어진 도토리가 싹을튀워서 이제 제법큰 꿀밤나무로 자라버렸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무덤의 축대는 아직도 완전한 제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즘 종교적인 이유로 또는 집안의 갈등때문에 그리고 유산상속등 돈문제 때문에 조상의 무덤을 방치하고 돌보지 않는 몰상식하고 전혀 인간같지

않은 족속들이 생각보다 많다.

관리를 하지 않을바에는 차라리 매장보다는 화장을 하거나 납골당에 안치를 하는등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이 있을텐데 이렇게 방치되어 있는 무덤들을 볼때면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분명 저기 누워계시는 분도 가족이 있고 자손이 있는 분명 뿌리가 있는 분이였을텐데 말이다...


한가위가 다가온다.

이번 추석에는 마음먹고 사촌,육촌 동생들에게 쓴소리 한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