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씻으면서

2013. 9. 21. 12:48작가를 꿈꾸며...

쌀을 씻으면서...

 

쌀을 씻는다.

혼자서 먹을 양이니 그리 많은 양도 아니다. 작은 플라스틱 두 컵이면 충분하다.

능숙한 솜씨로 물을 붓고 쌀을 불리면서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로 쌀을 조금집어서 입속으로 가져간다.

입속에 씹히는 오 도 독거리는 쌀의 식감을 느끼면서 내 마음은 어릴적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쌀 먹으면 니 엄마 젖꼭지 떨어진데이~”

먹을 것 이 귀하던 그 시절 주전부리라고는 딱히 없던터라 수시로 할머니나 어머니의 눈을 피해서 부엌옆에 놓여있는 쌀뒤주에서 고사리 손으로 한웅큼 쌀을 집어내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조금씩 꺼내먹는 그맛은 정말 포기할 수 없는 그 시절의 짜릿한 유희였고 즐거움 이였다.

아직 덜 자란탓 에 두 발끝을 곧추 세우고도 겨우 뒤주에 손을 넣어 쌀을 꺼내는 모습을 할머니에게 딱 걸려버렸다.

그런데 손주의 이런 모습이 귀여웠는지 아니면 우스웠는지 혼구녕을 내기는커녕 맛나게 쌀을 꺼내는 어린 나에게 할머니의 이 한마디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쌀을 먹는데 왜 멀쩡한 엄마 젖꼭지가 떨어진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나는 할머니의 그 말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어머니의 젖꼭지가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그 순간만은 쌀을 먹는 것이 왠지 모르게 두려워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이 흐르고 어린 나는 쉽사리 그 고소하고 오독거리는 식감을 잊지 못해 틈만 나면 뒤주에서 몰래 쌀을 꺼내먹곤

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난 할머니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서 들을 수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읍내까지 가려면 십리를 가야만 읍내에 갈 수 있다.

시골 동네치고는 가구수 가 100여 호 가 넘어 마을에 작은 운동장과 사택이 딸려있는 분교장도 있었고 또시골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방앗간도

한곳이 있었다.

읍내에는 5일마다 시골치고는 꽤 규모가 큰 장이 열린다.

읍내 인근에 화원과 옥포 그리고 논공 현풍과 고령까지 5개 면을 돌아가면서 번갈아 장이 열린다.

2일과 8일 논공장이 열린다.

장이 열리기 전날 동네 방앗간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집집마다 몇 가마 남지 않은 나락을 리어카에 실거나 수레에 실어 방앗간으로 가져온다.

방앗간에 도착하면 방앗간 최 씨 아저씨는 도착순서에 맞추어 가마니에 순번을 매기고 그 표시로 가져온 사람의 성시를 숯으로 표시한다.

방앗간 앞이 모처럼 왁 자 찌 껄 하다. 동네 아이들도 이날만큼은 다른곳 으로 놀러가지 않고 방앗간 앞 정자나무 아래서 술래잡기하듯 뱅뱅 돌면서 뛰어 다닌다.

 

방앗간은 동네 어귀 큰 정자나무 2그루가 있는 작은 도랑 옆에 있다.

도랑은 웃말(윗마을)에서 아랫말(아래마을)을 지나서 마을아래 큰 저수지로 흐른다.

정자나무는 아마 그 시절 내가 보았던 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우람했고 멋진 나무였다.

아마 수령이 3백년은 족히 넘었다는 동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자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이자 역사이자 산증인이다.

 

방앗간이 언제 만들어 졌는지?알수는 없지만 그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지붕과 벽체를 구성하고 있는 골함석에 켜켜히 내려앉아있는 붉은 녹물로도 그 나이를 어림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방앗간 안에는 큰 디젤엔진 하나가 방앗간을 움직이는 기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래바퀴 보다 더 크고 무거운 휠을 최 씨 아저씨와 그의 조수가 함께 힘을 모아 시동을 걸때면 최 씨 아저씨의 팔뚝과 어깨근육들이 울퉁불퉁 꿈틀거린다.

시동이 걸리면 처음에는 씩씩거리는 황소처럼 천천히 콧김을 뿜다가 최씨 아저씨가 숙달된 솜씨로 이곳저곳을 만지면 이내 숨고르기를 마친 증기기관차처럼 칙칙 푹푹입김을 방앗간 양철지붕위로 뿜으며 신나게 돌아간다.

잠시 방앗간 벽체의 양철판도 부르르요란한 한 번의 떨림이 있지만 이내 잠잠해진다.

 

쌀이 나온다.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가마니에 하얀 쌀을 가득 담고 수레에 실어 리어카에 실어 방앗간을 떠난다.

아이들도 아버지를 따라 하나 둘 정자나무를 떠난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나는 서서히 지쳐간다.

 

저 멀리서 아버지가 손짓하며 나를 부른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보니 방앗간 최 씨 아저씨처럼 아버지의 머리위로 하얀 등겨가 잔뜩 내려앉아있다.

아버지는 쌀을 가마니에 퍼 담다가 달려온 나에게 따끈따끈한 하얀 쌀 몇줌을 나의 윗옷주머니에 넣어주면서 가서 놀라고 한다.

아부지 쌀 묵으마 옴마 젖 떨어진다 카던데예~”

얼마전 할머니에게 뒤주에서 쌀을 꺼내다가 들었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빙긋이 웃으시면서...

괜챦다 할매가 쌀 묵지 말라고 카는 소리아이가~ 엄마 젖 안떨어진다~ 가서 놀아라~”

아버지의 그 말을 듣고나니 그동안 할머니 몰래 쌀을 꺼내먹으면서 가슴 졸였던 순간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윗옷주머니가 불룩하니 묵직합니다.

방금 방앗간에서 나온 쌀이라 온기마져 가득합니다.

두 손으로 혹여 쌀이 쏟아질까 웅켜쥐고 한달음에 달려 골목길 어귀에 다달았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나만의 아지트.

햇살가득 쏱아지는 골목길 담벼락에 서서 오른손으로 한줌가득 따끈한 쌀을 집어 모래 장난하듯 하늘을 보며 입속으로 흘려보냅니다.

따끈한 쌀의 온기가 혓바닥에 닿은순간 느껴지고 이내 오른쪽 어금니와 아랫니를 번갈아 교차하며 마치 맷돌처럼 입속의 쌀을 잘게 잘게 씹어봅니다. 어느새 쌀 알갱이는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입안에 쌀의 고소한맛과 침이 한가득 고입니다.

눈앞에 쏱아지는 따뜻한 겨울 햇살처럼 입안이 행복으로 가득합니다.

 

 

쌀을 씻으면서 추억을 떠올려봅니다.

또다시 쌀조금 집어서 입속으로 가져가 봅니다. 입안가득 그시절 그 추억이 또다시 하아얀 쌀뜨물처럼 아련히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