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냄비는 어머님의 젖무덤같은것?

2011. 3. 9. 07:30다시가고 싶은집(맛집은 아니고~)

※ 양은냄비와 라면~

 

소 같았으면 퇴근도 하지 않았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모처럼

여유롭게 연습장에서 골프채를 휘둘렀습니다.

 

조금 이른시간 본사에 들러서 2월 마감을 했던 서류들을 건내주고

미루어 두었던 연봉계약서에 시원하게 한줄 싸인을 휘갈기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날짜까지 또박또박 써 넣어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예전에야 월급날이면 누우런 봉투그득 담겨진 월급봉투를

받아들고 마치 부자라도 된듯 기분좋아했던날도 있었지만

요즘처럼 매달 그날이 오면 꼬박꼬박 통장에 또렷하게 찍혀있는

동그라미에 대해 별 감응을 느끼지 못한지 오래되었습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건만 볼을 스치는

바람은 '개구리가 감기걸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차갑습니다.

 

운동시간이 아직 남았음에도 왠일인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무렵, 반갑게도 공을 수거할 시간이라 잠시 멈추어 달라는 아가씨(?)의

안내멘트가 반갑게 들려옵니다.

공을 수거하는 시간이라고 해보아야 기껏 몇분 남짓한 시간인데 눈치없는 아가씨는 미리 덤으로 10분의 추가시간이 자동으로 연장시켜 주었습니다.

 

어차피 저녁식사는 해야할듯해서 잠시 쉬는시간을 이용해서 구내 식당을 찾았습니다.

마침 앞자리에서 손님이 라면을 드셨는지 투박스런 양은냄비가 보이길래 갑자기 나도 라면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면이 끓고 있는 시간이 무료해서 그릇장위에 놓여있는 책중에서 한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피천득님의 '인연'이라는 수필집이였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전부를 읽는다는것은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책중간을 펼치고 몇단락을 읽었습니다.

몇단락을 읽었을까! 아주머니가 다가옴을 느끼고 책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수저통에서 숫가락과 젓가락을 꺼내었습니다.

 

 "좀 짜울것 같지요~?"

얼핏보아도 국물의 양이 좀 모자란것이 걱정스러웠는지 라면을

식탁위에 내려놓으시면서 조심스럽게 눈치를 봅니다.

"짜면 물마시면 되지요~"

그소리를 들은 아주머니 안심을 하시고 주방으로 가셨습니다.

아주머니가 주방으로 사라지고 나서  마시기 위해 컵에 따라놓았던 냉수를 조금부어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운동을 하면서 제법 오랜시간 이곳 식당을  이용했었에

'물이 적다고~ 라면이 퍼졌다고~'

아주머니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정(精)이

들어 버렸습니다.

 

평소같았으면 라면에 계란이 반숙인지 아니면 헤쳐져 있는지 라면종류는 또 어떤것인지 생각도 해볼텐데...

왠일인지 오늘은 그냥 별다른 감흥없이 젓가락이 냄비에서 입으로 또다시 입에서 냄비로 반복적인 동작들만 되풀이 됩니다.

문득 라면이 담겨져 있는 양은냄비가 두눈에 클로즈업 되듯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한때는 번쩍이는 황금색 빛깔만큼이나 서민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주방용기의 대명사처럼 불리면서 사랑을 받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주전자,냄비,밥그릇,국그릇 까지...

하지만 지금은 겨우 그명맥만을 유지해오고 있는 현실을 볼때면 사람도 기계도 물건들도 모두 한때(?)가 있다는것이 서글퍼 지기도 합니다.

 

냄비근성...

"양은냄비처럼 한순간 부르르 끓었다가  금방 식어버린다~"고 한국사람의 특성이라고 혹자들은 비평을 하기도 합니다.

수저로 라면국물을 몇수저 떠먹었지만 별 감흥이 없습니다.

양은냄비를 두손으로 들고 국물을 마시려고 마음먹었지만 조금전까지 김이 무럭무럭나는 뜨거웠던 라면이기 생각나서 혹시나 손을 데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마음에 손가락 하나를 살짝 문질러 봅니다.

벌써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양은냄비...

양은냄비가 뜨겁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과감하게 두손으로 양은냄비를 잡고 입속으로 국물을 들이키는 순간 입속에서 

고통의 순간이 바로 엄습을 합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냄비를 내려놓고 컵에 담겨있던 냉수로 입속을 진정시켰습니다.

 

냄비는 비록 식었지만 냄비속에 담겨져 있던 라면국물은 아직도 뜨거웠습니다.

잠시 상념에 빠져 봅니다.

분명 처음에는 양은냄비의 뜨거운 입깁으로 물을 끓이고 라면을 품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식어버린 냄비를 뜨거운 라면국물이 덥혀주고 있다는 아주 사소한 사실에 놀랐습니다.

 

양은냄비를 보고 있노라니 어릴적 시골 개울가에서 보았던 이웃집 할머니들의 젖가슴이 떠오릅니다.

평생을 자식새끼 먹여 살리느라 빨리고 또 빨리고 나이들어 이제는 또 사랑스런 손주들 장난감으로 전락해버린 그 젖가슴...

이제는 더이상 여성의 상징이라고 할수있는 유방으로 불려지지도 누가 불러주지도 않지만 그녀들도 분명 젊은날 화려했고 탐스런 가슴이

있었을텐데...

 

어찌보면 우리들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양은냄비와도 같은 사랑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몸이 망가지는것도 모르고 닳아 없어지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자식들만을 위해서 애쓰고 헌신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낡고 찌그러지고 삭아버린 양은냄비에게 온기를 나눌수 있는것은 바로 우리들의 몫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