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만 보면 눈물나려고 합니다.

2012. 2. 4. 09:18그리운 사람들...

※ 짬뽕에 대한 눈물 나는 추억을 그리며

요일 날씨 많이 풀렸어요^^

금연도전 219일째...

108배도전(누적:4294배-216배)

그날이 아마도 91년도 2월인가!그러고 보니 벌써 17년전의 일입니다.

세월이 유수같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군대에서 1월 중순(정확하게 말하면 1월21일)경 전역을 해서 시골집에서 운전 면허증을 따기 위해 나름 열심히 학원을 다니고 있을때였습니다.

그당시 운전면허 학원비가 28만원이였으니 꽤나 큰돈이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정형편이 여의치않아 놀면서 집에서 용돈받고 학원비를 받고 하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않을때...

큰맘먹고 부모님 설득해서 30만원이란 거금을 받았습니다.

받은 30만원으로 학원등록비28만원...

나머지 2만원을 전부 버스토큰으로 바꾸어 오로지 학원 다니는데만 사용을 했습니다.

사실 군대가기전 나름 괜챦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비도 벌고 용돈도 쓰고...(한달에 30만원 넘게 받았슴)

그런데 그 회사가 전역후에 전역후에 의기양양하게 찾아가니...

"동종업계랑 손을잡고 통합을 하는바람에 자네 자리가 없어졌다"

는 믿기지않는 소리와 "한달뒤에 다시와 보라" 는 개풀뜯어먹는 소릴 듣고나서야 전역후 꿈꿔왔던 나의 장미빛 인생은 완전 새끼줄마냥 꼬여버렸습니다.

제대말년 나를따르는 수많은 쫄병들은 전역당시 큰소리로 떠들었던말

"내가 사회 나가있을때 느그들 찾아오면 내가 함쏜다~" 나의 호언장담을 믿었는지...

얼마지나지 않아 그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저녁무렵 운전학원을 나오는데 왠 군바리들이 여러넘(정확히 여섯넘인가!)날보고는 "일또옹 차~려~엇 박뱀께 경례~총성~~~"그랬다.

제대말년에는 '충성'이 아니고 '총성'이였다.

그래야 왠지 좀 멋있고 군기 빠진것 같았으니...

'아이구야 클났다'~~~.이눔무시키들 때거지로 술얻어묵을라꼬 휴가나오는날 바로 물어물어 대구로 날 찾아온 것이다.휴가나오면 집에부터 갈것이지...

서울놈,부산넘 대전놈등등...

이건 완죤히 짬봉도 아니고 전국구 입니다.

반갑게 웃으면서 포옹하고 악수도 했지만...

이미 박씨아저씨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가고 주머니속에 토큰밖에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시절 신용카드가 있었던것도 아니고...

이렇게 찾아온넘들 매정하게 돌려 보낼수는 더더욱

없는일이였기에...

 

먼저 시골집에 전화를 해서 군대 후배들이 찾아왔다고~ 오늘 집에서 잘거라고  전화를 해놓고 학원앞 중국집에 들어갔습니다.

집에 가는 버스가 오려면 최소한 2시간 정도 버스를 기다려야하는 그런 시골이였으니...

그래서 “저녁은 집에가서 먹고 소주나 한잔 하자~”고 하면서 짭뽕국물고량주를 시켰습니다.

(꼬량주 그넘이 엄청 독해서 군바리들 조금만 먹으면 거거든.ㅋㅋㅋ)

고량주를 마시면서 그간 사정 이야기도 하고 군대 이야기도 하면서 웃었지만 속으로는 주머니에 토큰뿐인  나자신이 슬퍼서 울었습니다.

버스가 올즈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오늘 차비는 내가 낼테니까...느그들이 오늘 행님한테 함쏴라"고 하면서 주머니에 있는 버스 토큰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집에 도착하니 방에는 울어무이 나름 정성을 들여 저녁상을 준비해 두시고 별도로 숨겨둔 술까지 내어주시면서...

"시골이라 묵을것도 없고 너무 급해서...다음에 오면 맛난거 마이해주께요" 하시며 미안해 하셨습니다.

미리 고량주도 한잔 마셨고 이넘들 우리어무이 한데 씩씩하게 "감사합니다 마이묵겠습니다"

하고는 정말 군인정신으로 맛나게 먹기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녁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자정이 가까워오고 후배넘들은 피곤했던지 모조리 코를 골면서 꿈속으로 떠나버렸습니다.

하지만 박씨아저씨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마신술이 취하는것도 아니였습니다.

조용히 방을 나와 마당에서 하늘을 보니 그놈의 달은 왜그리 푸르르던지...

차가운 시골 밤바람이 두볼을 비벼도 추운줄도 몰랐습니다.

그때 조용히 울어무이 이모습 지켜보시고는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미안하데이" 울어무이 그소리를 듣는순간 서러운 마음 복받쳐 참고있던 눈물이 마구마구 흘러내렸습니다.

울어무이 눈에서도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지고...

그렇게 한참을 우리어무이를 부둥켜 안고 서럽게 울고나니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내자신이 왜그리 초라했는지...)

다음날 아침을 먹고 후배넘들 간다고 인사를 드리고 함께 나가려는데...

울어무이 나를 부르시더니 한손에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두장을 쥐어주시면서...

"자들 읍내가서 뭐라도 좀 사주고 보내라.그냥 보내마 되나"

아마 지남 밤새도록 울어무이 잠드시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해서 그넘들 다 돌려 보내고 ...

그이후로 전화 몇통화 오고가고 그렇게 다들 잘먹고 잘살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박씨 아저씨도 한달뒤에 건설회사에 취직해서 나름 ‘내가 제일 잘나가~‘라고 외치면서 살아가는중입니다.

가끔 짬봉국물을 보면 그때 그시절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이 떠오릅니다.

요즘 그 쫄병넘들 요즘 다들 잘지네고 있는지?

 

※ 이글 역시 예전에 발행했던 글이지만 출판사 원고 정리하면서 옛추억에 젖어 재발행합니다.

오늘은 울진에서 벙개가 있습니다. 잘다녀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