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死六臣)의 혼(魂)이 모셔져 있는 육신사(六臣祠)를 찾아서...

2009. 3. 10. 12:22바람따라 물따라

제 우연히 통화가 된 예전에 함게 근무했던 직장동료이자 중학교 선배이신 지인과 모처럼 만남의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함께 점심식사후에 바람도 쐬일겸 들러본곳이 인근에 있는 육신사(六臣祠)였다.집에서 가가운 거리인데도 한번 가보지 못하고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가볼수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학교 다니면서 시험문제에 그렇게 많이도 나왔던 사육신과 생육신...그럼 참고로 사육신과(死六臣)생육신(生六臣)에 대해서 먼저 간단하게 요약하면...

육신(死六臣)

조선시대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죽음을 당한 6명의 신하.

성삼문(成三問:1418~56)·하위지(河緯地:1387~1456)·이개(李塏:1417~56)·유성원(柳誠源:?~1456)·박팽년(朴彭年:1417~56)·유응부(兪應孚:?~1456) 등을 일컫는다.

육신(生六臣)

조선시대 단종(1452~55 재위)이 숙부 수양대군(首陽大君:뒤의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관직에 나가지 않고 절의를 지킨 6명의 신하.
김시습(金時習:1435~95)·원호(元昊)·이맹전(李孟專)·조려(趙旅:1420~89)·성담수(成聃壽)·남효온(南孝溫:1454~92)을 말한다. 단종복위운동의 실패로 죽음을 당한 사육신에 비해서 살아서 절개를 지켰다는 의미에서 생육신으로 불렀다.

외삼문(입구)

저 육신사(六臣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사육신(死六臣) 중에 한분인 박팽년(朴彭年:1417~56)에 대해서 먼저 몇가지 이야기를 하고 설명을

하는것이 아마도 맞을듯하다.

박팽년은 조선 세종16년(1434)에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학사가 되어 성삼문 등과 함께 여러가지 편찬사업에 참가하였다.세종의 유명(遺命)을 받아 문종을 보필하였고 문종재위 2년후 고명(顧命)을 받아 어린 단종을 돕다가 충청 관찰사로 나갔다.외직에 있는동안 계유정난이 일어났고 그후 형조참판으로

제수되어 내직에 근무하게 되고 그후 단종 복위운동을 추진하다가 밀고에 의해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 투옥되었다.평소 박팽년의 재주를 아끼던 세조가 김질을 보내어 모의사실을 부인하면 살려준다고 회유했으나 끝내거절했다.이에 마지못해 세조가 친국을 하였으나 살기를 거부 그의 신하되기를 포기했다.

이에 환가난 세조는 모진고문으로 8일만에 옥중에서 순절하였고 그의 부친을 비롯 4형제와 아들3형제를 모두 처형하였으며 모친,처,제수,며느리들은 모두 대역죄인의 가족이라 하여 공신들의 노비나 관비가 되었다.이때 박팽년의 둘재아들 박순의 아내 성주이씨가 임신중이었지만 관비로 친정동네인 닭밭골(한자)로 내려왔엇는데...아들을 낳으면 죽음을 당하고 딸을 낳으면 관비가 되는 기구한 삶을 영위해야 했다.해산을 하니 아들이었지만 그무렵 해산한 여종의 딸과 바꿔치기를 하여 외할아버지에 의해서 박비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키워지게되어 대를 이을수 있었다.박비가 17세때 그의 이모부 이극균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이사실을 알고 자수를 권하고 이때 성종에게 사면을 받고 돌아와서 후손이 없는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아 종택을 짓고 묘골에 정착하였다.이분이 바로 사육신(死六臣)여섯가문중 유일하게 대를이은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다.묘골 순천박씨 입향시조인셈이다.이에 그후손들이

절의묘(節義廟)란 사당을 세우고 할아버지 박팽년의 절의를 우러르며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그런데 그의 현손인 계창이 고조부의 제삿날 꿈에 다른다섯분의 선생들이 서성거리는 것을보고 그후 다른다섯분의 제물도 함께차려 제사를 모셨고 하빈사를 세워 사육신(死六臣)을 함께 배향했으며 오랜세월 훼손된것을 1979년 고 박정희대통령이 '충효위인유적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외삼문안쪽에 걸려있는 현판 '절의묘' 글처럼 힘찬 절의가 느껴진다.

 내삼문

 태고정

 관리사

 내삼문(사당입구)을 지나면 사육신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이 나온다.

 사육신육각비(비석 일면마다 한사람의 업적이기록되어 있음)

 아주 오래전 대통령을 하셨던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싸인이 있는 기념비...

 이사진은 설명을 해야할듯해서...육신사를 비롯한 일대 모든땅이 고박준규 국회의장의 땅이란다.그리고 순천박씨종친회장이시고...

그래서 이땅을 모두 기증하셔서 이렇게 꾸밀수 있었다고...

지금도 많은 한옥을 보수하고 새로짓고 하는것을 볼수 잇었다.예전에 약 300여호의 순천박씨 집성촌이었는데 현재 약 30호정도만 남아있어

계속적으로 공사를 추진하고 있었다.

 혹시 찾아가보실분을 위해서 주소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638번지 전화번호 053)586-4672 번 입니다.

 현장에 가시면 안내를 해주시는 분도 있고 안내책자도 있습니다.주말 가족들과 함께 한번즈음 들러볼만한곳이라 생각되어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