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그리운 까닭은 ?

2013. 2. 13. 12:30이판사판공사판

※ 추억과 흔적이 남아있는 고향마을을 돌아보니...

2013년 02월13일 수요일 날씨맑음...

금연 591일째...

새로운 도전중...

 

고향길.

흰눈 펑펑 내리던날

울아버지 덜덜덜 오토바이 타고 가셨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손잡고 이길을 가셨습니다

 

길옆 푸른저수지 긴긴 겨울밤 "으르릉"거리며 울던날

할아버지 할머니 잡은손 놓으시고 먼길을 떠났습니다

내가 이길을 "부르릉" 차를 몰고 지나가면 하얀 눈송이가 꽃잎마냥

날리웁니다

 

꽃피는 봄날 돌아오면

푸르른 저수지 옆 버들가지 파릇파릇 물오르고 앞산 진달래꽃도

흐드러지게 피어나겠죠?

 

내아들은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리고

나의 아버지가 어머니가 지나간 이길을 지나갈까요?

                                                                       2012 . 10. 07 박씨아저씨가...

이 시(詩) 는 2012년 10.7일 아침에 사랑하는 두 아들을 생각하면서 카스에 써놓았던 글을 설명절이 지난 오늘 조금 수정해보았습니다.

올해 설명절은 앞으로도 두고 두고 아련하게 기억이 남을 설명절이 될것같습니다.

뭐 요즘은 예전과는 다르게 설명절의 의미가 퇴색되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우리고유의 최대 명절입니다. 이번 설날 박씨아저씨는 모처럼 차례를 모시고 짬을 내어 추억에빠져 고향동네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추억도 더듬고 또 친구들에게 스마트폰으로 고향소식을 전해주기도 했었습니다.

디지털 세상의 최고걸작인 스마트 폰이 전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유산인 추억서린 시골동네의 모습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노거수가 있는 풍경.」

마을입구의 풍경입니다.

지금 노거수의 모습은 초라하고 볼품이 없지만 마을이 생길때부터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수령이 400년이 넘은 노거수 입니다.

예전에는 정자도 없었지만 지금은 새롭게 정자도 생겨나고 마을공동 창고자리는 마을회관겸 노인정이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어릴적  바로 옆에 정미소가 하나 있었는데 없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어릴적 정미소에서 갓찧은 쌀한주먹 주머니에 넣고 아껴먹던 그맛 갑자기 추억처럼 밀려옵니다.

「사라져버린 집.」

한해 후배 '최영관' 이란 후배가 살았던 집이였는데 지금은 다른곳으로 이사를 간지 꽤나 되어서 집도 사라져 버리고 누군가 구입하여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지막한 돌담만이 예전에 집터였다는것을 알려주는듯합니다.

「돌담길 돌아서면...」

돌담길 돌아서면~~~

그누군가가 손흔들며 달려나올것같은 추억속의 마을길입니다.

좌측으로 돌아가면 작은 할아버지 댁이 나오고 조금만 더 올라서 우측에는 '하청곤' 이라는 한살 어린 후배가 살던집이 있었고 바로옆 마지막집에는

손씨성을가진 영태란 후배가 살던집이였습니다.

「추억속의 돌담길.」

예전 어릴적 아주 쉽게 볼수 있는 담장입니다.

요즘은 민속촌이나 시골이 아닌곳에서는 만날수 없는길 입니다.

돌만으로 쌓은 제주도식 담장도 있지만 돌사이사이 볏짚(여물)을 썰어넣고 반죽한 흙을 넣고 쌓은 담장입니다.

「돌담길 돌아서보니...」

좌측이 작은 할아버지가 사셨던 집이네요^^

돌담사이로 자라난 감나무가 환경 친화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 흔한 대문도 없습니다.

바로 전면에 보이는 집이 '영태'라는 후배가 사는집입니다.

옛날에는 파아란 페인트가 칠해진 한옥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양옥으로 바뀐지도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아랫마을 쪽으로 발길을 돌려보아야겠네요~

「친구집과 빈집터...」

친구집입니다.

아마 몇번을 들락날락 했었지만 기억나는것은 설날 저녁 어느날 골목방에서 친구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동동주먹고 알딸딸했던 기억이...

작년 추석이 지나고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이제 빈집으로만 남아 있어 더욱더 쓸쓸합니다.

그리고 우측에 잡초만이 무성한터.

이곳역시 한때는 친구였던 아이가 살고 있던 곳입니다.

참 사연도 많고 말도 많았던 친구였지만 이제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너무나 멀리있기에 아쉬움만 더합니다.

「친구집.」

그어릴적 유난히도 키가 컷던 친구가 살던 집입니다.

이제는 친구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빈집인줄 알았는데 누군가 살고있는 흔적이 남겨져 있습니다.

달려가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작은 문을 열고 친구가 뛰어나올것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이곳에 없다는것을 너무나 잘알기에...

사진을 몇컷 담아서 추억이 그리운 옛날 집주인에게 카톡으로 구정선물이라고 전송해 주었습니다.

「이골목 끝에는?」

이 골목길은 특히 추억이 많은 골목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었고 또 그 이후에 동장댁에 공동전화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경호라는 한해 후배 아이가 살고 있었고 참 나름 잘사는 집이였는데 안내방송으로 누구집에 전화왔다는 방송이 나오면 혹시나 전화가 끓길새라

고무신발로 동장님으로 달려가시던 부모님들...

그리고 전해져오는 이야기들...

그리고 이골목안에는 3명의 여자친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경례,춘희 그리고 혜숙이...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이녀석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다 최근 카카오톡과 카스 때문에 친구녀석들의 소식도 접하게 되고 동창회에서

만날수도 있었습니다.

30년이 흘쩍넘어 만났지만 옛날 그시절 불렀던 호칭 그대로 " 짜슥아야~ 가스나야~" 를 불러도 그 누구 하나 어색하지도 않았던 기억이...

「친구집...」

길고 좁은 골목길 끝에 친구집입니다.

기억이 맞다면 친구 위로 언니가 하나 그리고 오빠가 하나 아래로는 남동생이 한명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누나는 형과 동기였고 남동생은 내 동생과 동기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연새가 우리 아버지와 동갑이셨다는 것도 추억꺼리 입니다.

「친구집...」

역시 골목길에 있는 친구집입니다.

마을에서는 귀했던 손씨성을 가졌던 친구집 어릴적에는 늘상 '경희' 라고 불렀는데 본명은 그이름과 달랐다는 사실...

이친구집 옆집이 '춘희' 라는 이름을 가졌던 친구가 살던집...

예전에는 정말 키가 조그만 했었는데 이제는 제법 키가 자랐더군요~ㅎㅎㅎ (마이컷다 친구야~)

참 공교롭게도 이친구의 아버님과 또 옆집의 친구 아버님은 우리 아버지랑 동갑이시고 친구분들이시라 더욱더 가깝게 지내기도 했었던 기억이...

역시나 위에 형이나 동생들이 우리집의 형과 동생이랑 나이가 같다는 공통점도...

「문주만 덩그러니...」

'차식' 이라는 이름의 형님이 살던집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형님보다는 낚시를 즐기셨던 할마버지가 더 많은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밀집모자를 쓰시고 모시삼배 적삼을 걸치시고 여름한철 저수지에서 붕어낚시를 즐기시던 그모습 아직까지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아마 기억이 맞다면 '차식'이라는 형님은 동네에 처음으로 경운기를 구입해 농사를 지으셨고 또 경운기를 개조해 대우(2륜을 4륜으로 바꾸는 구동장치)를 달고 그 시골길을 자동차처럼 질주하기도 했었습니다.

저수지가 수몰되기전 아마 동네에서는 기계농업화를 도입해서 트랙터나 이양기를 이용해 농사를 짓기도 했었는데 아마 그당시에는 거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동네에서 벼농사를 제일 많이 지었기에 제법 큰 벼저장 창고와 뜨락이 높은 한옥이 있었고 처음에는 나무대문이였지만 동네 최초로그당시로는

드물게 시멘트를 섞어만든 문주에 사자문양의 손잡이가 달린 철대문도 달려있었던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집도 창고도 그리고 주렁주렁 달리던 감나무들도...

「흔적...」

참 세월이 많이 흘렀나 봅니다.

이제 거의 박씨아저씨 집까지 다와갑니다.

「놀이터...」

파아랗게 채소가 자라는 이 논이 그옛날 박씨아저씨의 겨울철 놀이터 였습니다.

활을 쏘기도 하고 '오징어' 라는 논바닥에 오징어 처럼 생긴 줄을 긋고 하던 놀이를 하기도 하고 '마때'(잣치기) 라는 놀이를 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가을 농사가 끝난 이곳이 반질반질 하도록 동네 꼬마녀석들이 얼마나 뛰고 넘어지고 달렸는지...

「위험했던곳...」

어릴적 초등학교 1~2학년때 처음 친구랑 자전거를 배운다고 친구 아버지 자전거 타고 참으로 많이 곤두박질 쳤던 곳입니다.

다리가 짧아서 제대로 안장에 올라않을수도 없고 자전거 몸체 사이로 다리를 넣어서(일명 새치기) 자전거를 타는 방법으로 자전거를 배웠던 그 어린시절...

이 언덕은 왜 그리 높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전거와 함께 많이 떨어지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며서 까진 무릎보다 '친구 아버님의 자전거가 고장나지 않았나~'를 걱정했었는데...

이제는 골목 어디에서도 그렇게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들도 타는 아이들도 더 이상 볼수가 없습니다.

「차곤이집...」

박씨아저씨랑 가장 치한 친구의 집입니다.

어릴적에는 갓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웠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마을에서 제일 갓쪽(가장자리) 에 있어서 그런 별칭이 붙은듯...

설명절이라고 남자형제들이 모두 모여 차가 3대입니다.

서울에서 온 친구동생의 차도 보이고 이번에 새로구입한 친구형님차도 보이고 친구차도 보입니다.

정말 지금껏 살아오면서 '죽마고우' 라고 말할수 있는친구...

누가 뭐래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사실은 변할수가 없습니다.

이친구와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아서 아예 시작을 하면 안될듯합니다. 그만큼 친하고 사연많은 친구입니다.

「모르는집.」

이제는 동네 곳곳에 예전에 이마을에 살지 않았던 분들의 집들이 생겨납니다.

아마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 누군지 무엇을 하는 분인지 알지 못합니다. 나랑 상관없는 추억이 없는 집이기에 더이상 관심을 가질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버님은 분명 이분이 무슨일을 하시는지?

어디서 오셨는지? 등등 분명 박씨아저씨가 궁금해하지 않는 많은것들을 알고 있을겁니다.

하지만 굳이 물어볼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참 모처럼 고향을 찾아 이곳 저곳을 둘러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떠나고 흔적도 사라지고 가슴이 아프고 짠하지만 아직은 내가 찾아야할곳이 있고 또 나를 반겨줄 사람들이 있는 그곳.

바로 고향이 아닌가 합니다.

이웃분들 설명절 잘보내셨는지요?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사진속의 공주들은 박씨아저씨의 유일무이한 친조카 입니다.